언론보도

폭염이 들춰낸 이웃집 냄새…‘삶의 체념’ 1.5톤을 치웠다

2022-09-14

현장 | 쓰레기집 특수청소 동행 취재
바퀴벌레 들끓고 썩은내 찌르는
6평 원룸·아파트·고독사 집 청소
“주민 불안정심리 치유 병행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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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은 보이지 않던 공간을 들춰낸다. 내밀한 공간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냄새 탓에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이 있다. ‘쓰레기가 쌓인 집(쓰레기집)’이 대표적이다. 2019년부터 특수청소업체를 운영해온 에버그린 대표 김현섭(40)씨는 “여름에 (청소) 의뢰가 늘어나는데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이 많다”고 말했다.

 

주거 취약지는 폭염의 피해가 증폭되는 곳이다. 쪽방촌, 다세대·다가구 주택 밀집 지역 등은 녹지가 거의 없어 여름철에 실내 온도가 높은 편이다. 따닥따닥 붙은 건물이 창문을 막아 더운 공기는 빠져나갈 곳이 없다. 높은 실내 온도는 부패로 이어져 냄새를 낳고 벌레를 끌어모은다.

 

<한겨레>는 특수청소업체 에버그린의 협조로 지난 7월18~21일 쓰레기집 2곳(서울 광진구, 노원구)과 고독사 현장 1곳(강서구) 청소에 동행 취재했다. 폭염이 들춰낸 숨겨진 삶의 현장이다.

 

바퀴와 악취…왜 쓰레기 모으나

 

7월19일 낮 1시께 현장 팀장과 직원 등 3명이 서울 광진구의 한 단독주택 입구에서 만났다. 섭씨 30∼31도를 오가는 습한 날이었다. 청소 현장은 단독주택 1층을 쪼개 만든 6개의 원룸 중 하나인데, “청소 난이도는 ‘하’ 정도”로 금방 마무리될 것이라고 김 대표가 말했다. 현관문을 열자 6평(약 20㎡)이 채 안 되는 방에 눌려 있던 쿰쿰한 냄새가 마스크를 뚫고 올라왔다. 하나 있는 창은 옆 건물 외벽과 바싹 붙어있어 환기가 어려웠다.

 

두 발이 겨우 지날 자리를 빼고는 각종 쓰레기와 생활용품이 담긴 플라스틱 서랍장, 박스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아이돌 앨범, 패션 관련 전공 서적, 고데기, 쓰다 버린 화장품 등이 집주인의 나이와 직업을 짐작하게 했다. 철제 이층 침대 위에는 남은 맥주와 음료수, 즉석 음식 포장지, 켜켜이 쌓인 배달 음식 일회용 그릇들 쌓여 있었다. 짧은 숨을 내쉬자 현장 팀장인 50대 황아무개씨는 “이 정도면 내 집보다 깨끗하다”며 농을 던졌다. 이날 6평짜리 집에서 나온 쓰레기는 80㎏짜리 마대 12개 분량이었다. 마대는 1.5t 트럭에 실려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쓰레기집 청소 수요는 “여름철에 많은”(김연희 한국정리수납협동조합 이사장)데 집안에서 음식물이 부패하면서 고약한 냄새가 나 이웃들의 민원이 늘기 때문이다. 20일 아침 7시20분께 “청소 난이도가 중상 정도”(김 대표)라고 평가받은 36년 된 서울 노원구의 노후 아파트(15.5평·51.48㎡)를 찾았을 때는 복도에서부터 어디서 비롯됐는지 모를 암모니아 향과 시큼한 냄새가 코와 목젖을 자극했다. 배달용기에 눌어붙어 부패해 흐물거리는 음식물과 뜯지도 않은 채 안에서부터 썩은 음식물이 내뿜는 냄새는 탈취제를 뿌려도 사라지지 않았다.


저장강박증 방치 위험…불안정 심리 치료와 연계해야

 

전날 원룸 냉장고에서 곰팡이가 뒤덮여 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물이 구정물과 함께 쏟아질 때도 쓰지 않았던 공업용 마스크가 ‘중상 난이도’에서는 필수품이 됐다. 서랍 등 수납공간마다 뜯지 않은 오래된 우편물과 체납고지서, 동전 뭉치들이 계속 발견됐는데, 직원 이아무개(34)씨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저장강박증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청소의 적은 바퀴벌레였다. 에어컨을 쓸 수 없어 여름 집 안의 기온과 습도가 높아지면, 방은 벌레 번식에 최적화된 환경으로 변한다. 남은 음식물들이 끌어모은 바퀴벌레가 천장, 바닥, 침대 등 거의 모든 장소에 들끓었다. 커다란 바퀴벌레가 작업하는 중 얼굴로 덮치는 통에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바퀴벌레는 플라스틱 통, 장롱, 서랍 등 사람의 손이 닿는 공간마다 배설물과 알집을 흩뿌려 놓았다. 이런 곳에서는 방진복이 필수다. “집에 가면 옷을 바로 벗고 신발 밑을 잘 닦으셔야 해요. 청소하다 보면 알이 옷에 묻어서 번식해 본인 집에도 바퀴벌레가 생길 수 있어요.” 서랍장 속 달아나는 바퀴벌레를 손으로 털어내며 이씨가 말했다.

 

쓰레기집 모두 최근까지 사람이 살았거나 살고 있는 곳이었다. 다만 청소 의뢰자는 가족이나 임대인이었다. 이씨는 “쓰레기집 청소를 의뢰하는 분들 중에선 나중에 다시 (청소해달라고) 연락이 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거주자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가 치유되지 않으면 쓰레기는 계속 쌓이기 때문이다. 전진용 울산대학교 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저장강박증은 스스로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데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기에 방치되는 사례가 많다. 건강에 많은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쓰레기집 등을 발굴해서 치료와 연계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 25개 자치구 중 11곳이 조례에 근거해 쓰레기집 청소 예산을 집행한다. 그러나 전체 현황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떠난 자의 흔적을 지우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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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드러나는 것도 냄새 때문일 때가 있다. “여기 탈취는 하시는 거죠? 2층에 사는데 냄새가 너무 심해서요.” 청소하다 빌라 입구에서 쉬고 있는데 초등학생 딸의 손을 잡은 여성이 말을 걸었다. 여름철 기온이 급격히 오르면서 부패가 빠르게 진행되고, 안방을 가득 찬 냄새가 밖으로 새어 나와 빌라 전체로 퍼져나간 것이다. ‘냄새가 그리 심했나’라고 되묻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황 팀장은 “고독사 현장을 가면 ‘내 집도 탈취해주나’라는 이웃들의 민원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21일 방문한 청소 현장은 서울 강서구의 3층짜리 빌라 반지하였다. 거친 빠루(노루발못뽑이) 질로 할퀴어져 뜯긴 현관문 끝부분과 부서져 덜렁거리는 도어락이 고인이 발견될 당시 긴박했던 순간을 알려줬다. 체액이 스며든 안방 침대는 마지막 모습을 가늠하게 했다. 쓰레기집에서 냄새의 원인은 음식물 쓰레기와 곰팡이인 경우가 많아 청소 작업을 하면 상당 부분 해결된다. 하지만 고독사 현장은 다르다. 주검이 오래 머문 곳일수록 탈취 작업을 여러 차례 해야 한다. 청소가 끝나면 벽지와 장판까지 다 뜯어내 약품 처리한다. 모든 과정이 끝난 뒤에도 냄새가 남아 있으면 특수 장치를 이용한 소독 작업을 진행한다. 황 팀장은 장판 밑에 눌어붙은 체액 흔적을 세제 묻은 수세미로 닦아내며 “인간의 존엄이라는 게 있으니 그런 것(냄새)에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떠난 자가 남기고 간 흔적을 치운다는 특수성이 있다 보니, 청소업체 직원들은 별다른 부탁을 받지 않아도 개인정보가 담긴 물품들을 꼼꼼하게 챙긴다. 유족들이 냄새 때문에 고인의 흔적을 제대로 살펴보지 못한 채 급히 청소를 의뢰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씨는 청소 도중 장롱 속 앨범, 각종 의료 기록 및 처방전, 귀금속 등을 유족에게 돌려주기 위해 방구석에 따로 모아뒀다. 

 

고독사 현장 청소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에버그린의 경우 고독사 등 사망 현장 청소 비중은 지난해 32%로 쓰레기집(37%) 청소와 비슷했다. 김 대표는 “(고독사 현장 청소는) 2021년 들어 20∼30% 늘었다. 일주일에 2∼3건씩 접수되는데 모두 주거 환경이 열악한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고독사는 오래된 다가구 주택이나 고시원, 쪽방 등이 밀집된 지역에서 많이 발생한다. 송인주 서울시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고독사가 발생한 30곳을 실태조사 해보니 다가구 주택이 밀집된 곳이거나 차가 진입하기 어려운 집, 반지하였다. (고독사가 발생한 곳의) 지역 주민들로부터도 ‘여기는 이런 일이 많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